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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귀찜, 새 조리법 등장으로 소비량 급증 대표 생선

식약일보 | 기사입력 2019/04/11 [15:48]
아귀찜은 언제부터 유명해졌나?

아귀찜, 새 조리법 등장으로 소비량 급증 대표 생선

아귀찜은 언제부터 유명해졌나?

식약일보 | 입력 : 2019/04/11 [15:48]

마산의 대표적 향토음식인 ‘아귀찜’의 등장과 확산 과정을 추적한 연구결과가 나왔다. 생김새가 흉측한 아귀는 과거엔 그물에 걸려 올라오면 어부가 바다에 던져버렸던 생선이었다. 아귀찜은 “마산의 혹부리 할머니가 어부가 가져다준 아귀를 던져버렸다가 나중에 말라있는 것을 발견하고 찜으로 만들었다”는 얘기가 확실한 출처도 없이 전해지고 있다.

 

11일 한국식품커뮤니케이션포럼(KOFRUM)에 따르면 경남대 식품영양생명학부 이규진 교수는 ‘한국식생활문화학회지’ 최근호에 실린 연구논문(‘아귀찜’의 등장과 확산)을 통해 “19세기 초 문헌을 통해 전라ㆍ경상 지역에 모두 아귀가 있었으며, 특히 경남 김해에서 식용됐다”고 밝혔다.

 

일제강점기에 아귀는 주로 한반도에 거주했던 일본인에 의해 소비된 것으로 보이지만 조선인도 전국에 걸쳐 아귀를 잡았다는 것이 확인됐으며 자연스럽게 식용으로 이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해방 후 경남ㆍ전남ㆍ인천 등에선 가정과 식당에서 아귀를 주로 ‘탕’으로 섭취했다. 아귀탕을 각기 자기 지방의 향토 음식으로 인식했다. 마산에서 건아귀를 이용한 아귀찜이 등장한 것은 1960년대였다.

 

이 교수는 논문에서 ”마산 아귀찜 유래에 대해선 특정인이 개발했다는 주장, 먹을 것이 부족했던 피난민이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는 주장, 기존에 있던 북어찜ㆍ복찜이나 지지미 같은 음식에 아귀를 적용해서 만들어졌다는 주장 등 다양한 설이 있다“며 ”마산에서 건아귀에 ‘찜’이란 조리법이 사용된 뒤 마산 시민에 의해 소비ㆍ발전되면서 인기 외식 상품으로 떠올랐다“고 설명했다.

 

이후 마산 아귀찜은 지역 음식에 머물지 않고 1982년 전국체전 이후 다른 지역에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1970년 대 말부터 서울 낙원동ㆍ신사동 등에 아귀찜 음식점이 생겼다. 1990년대엔 아귀찜 거리가 형성됐다. 1990년대 중반엔 대중가요나 문학작품의 소재로도 아귀찜이 등장했다.

 

마산 아귀찜이 건아귀에 콩나물을 넣어 만드는 것과는 달리 군산식 아귀찜은 생아귀를 쓰고 미나리를 듬뿍 넣는다. 아귀찜 상표등록을 둘러싸고 마산과 군산은 신경전을 벌였지만, 2001년 마산이 상표 등록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서울에 상경한 아귀찜은 마산을 앞세운 간판을 내걸었다. 마산 아귀찜의 가장 큰 특징인 건아귀 대신 생아귀를 쓰는 등 서울사람의 입맛에 맞게 변형됐다.

 

이 교수는 논문에서 ”‘아귀찜’이란 음식명 자체는 건아귀를 이용했을 때 적합하고, 생아귀로 만든 음식은 ‘아귀 볶음’이 더 가까울 수 있다“며 ”이미 굳어진 아귀찜이란 음식명과 향토색이 느껴지는 마산이란 지명이 합쳐져 ‘마산 아귀찜’은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고 소개했다.

 

1960년대 아귀는 주로 수출하는 어업자원이었다. 아귀찜 개발과 아귀거리 형성과 맞물려 국내 소비가 급증하면서 1990년대부터 수입이 급격하게 늘어난다. 아귀는 ‘찜’이란 새 조리법 적용에 따라 소비량이 극적으로 늘어난 대표적인 식재료로 통한다. 짧은 시기에 전국화에 성공한 음식으로 평가되고 있다. 강경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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